영화는 바로크 시대의 예술 수요자와 생산자의 지위, 관계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대 예술에 속하는 이 시기에는 중상주의와 절대주의가 맞물려있었고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된 왕은 신흥세력 즉, 대자본을 가진 상인들을 귀족으로 편입시키며 기존 귀족들과 세력을 견제하며 왕권을 더욱 강화시키는데 일조한다.
바로크 시대 왕정복고의 대표주자 격인 프랑스 루이 14세는 자신의 왕권을 확고히 하고자 귀족들을 유흥에 빠지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발레, 연극, 오페라 등의 공연예술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는데 이 공연예술은 과시적 소비 욕망의 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유한계급인 왕과 귀족 소수 인원만이 예술 수요자였으며 그들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작품을 요구하기도 하고 완성된 작품은 예술가의 작품이 아닌 예술 수요자의 작품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도시 단위의 길드에 속하거나 국가 단위의 아카데미에 속했는데, 왕권이 강화된 시기인 만큼 길드보다는 아카데미 소속이 인정받았고 그들은 예술작품 생산뿐만 아니라 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소속 예술가들은 규제가 많았던 길드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가 륄리는 아카데미 소속의 궁정음악가다. 극작가 몰리에르도 국가에 소속된 왕을 위한 예술가였다. 자신을 후원해 주는 귀족이나 왕이 자신의 작품에 흥미를 잃고 돌아서버리면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들은 성심성의껏 주인을 위해 일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바친다. 예술가라기 보다 하인에 가까운 위치다. 륄리는 루이를 위해 언제나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새로운 음악을 연주하고 헌신한다. 그가 사랑을 나눌 때도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넘길 때도 연주로 응원한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이 시대 음악은 일회성 음악, 실용 음악이었다. 이는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교향곡의 수와 베토벤, 슈베르트의 교향곡의 수가 현저히 차이 나는 근대 음악의 발생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륄리는 음악으로 루이를 춤추게 만들었다. 지휘봉으로 발등을 잘못 찍어서 발을 잘라내야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라내면 왕과 춤을 못 춘다는 이유로 그대로 죽음을 택한다. 자신은 죽어가지만 루이는 자신의 죽음조차 모를 거라는 죽기 직전의 회환은 궁정 예술가의 비참한 결말로 보여진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음악은 부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륄리의 존재감은 무게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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