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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자, 정혜> 감상문(1)

by 이부진 2022. 10. 8.

일상과 만나다

  정혜가 TV를 멍하니 보다가 자기 발 옆에 흩어져있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쓱쓱, 쓸어 담아 쥐고는 탁자 위에 놓는다. 이런 디테일한 장면이 남자 감독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에게 밥을 줄 때도 사료 위에 참치를 올리다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쪽, 빠는 모습이라든지 고양이의 밥이 상했는지 확인할 때 그릇을 코에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은 ‘지극히’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아니, 평범함 우리의 모습이었다.

보통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절대적으로 배제되어 왔었던 장면들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화들은 잘 짜여진 인과관계로 구성되며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등장시키는 중심 사건들만의 나열이다. 당신은 본 적 있는가? 내러티브상에서 불필요한 장면들, 이를테면 주인공이 어떤 장소로 가기 위해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갈까? 혹은 지하철을 탈까, 버스를 탈까? 하는 등의 사소한 고민들이나 생각들 말이다.

 

우리는 중심화된 사건들,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길들여져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특별함은 사소한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여자, 정혜’에는 배경음악도 인위적 스토리도 없다. 할리우드식 촬영기법도 없고 피사체를 돋보이게 해주는 조명 기술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보아왔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드라마틱 하고 역동적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정혜는 우리 같은 혹은, 우리보다 더 지루하리만큼 잔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녀처럼 우리도 하루에 수없이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반부 20분 동안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닮은) 가운데 계속해서 흔들리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그녀의 삶을 보며 불편하고 답답하고 지루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녀의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란 듯이 알려주는 자명종의 사정없는 울림은 이 영화에서 음악이 없는 틈을 타 우리의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소리 중 하나이다. 현실에서의 우리 일상에서는 보통 영화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음악들은 들리지 않는다. 아니, 그런 음악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배경음악을 거의 자제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이 영화는 제3자의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듯 처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핸드헬드 기법, 그리고 아이 레벨로 보여주며 정혜의 친구가 된 듯 그녀의 일상을 담아낸다.   

 

감독은 “이 영화에 구원이나 영혼이나 사랑이라는 큰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혜’를 보면서 상처와 치유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라며 그녀는 ‘특별한’사람이 아닌, 우리 가까이에 있는 그 누군가이기 때문에” 라고 말한다. 나 또한 이 영화가 너무나 솔직하리만큼 정혜에 대한 일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일 뿐만 아니라 그 뒤에 가려진 상처들을 하나쯤은 갖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영화는 정혜로 하여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상처들을 뒤돌아보게끔 만든다. 묵묵히 정혜처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 정혜로 하여금 그 상처가 표면 위로 떠오른다.  

이렇듯 여자, 정혜는 그녀의 삶에서 만남은 많지만 의미는 없는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걸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된다. 앞서 말한 이런 지루함과 불편함은 후반부에 나오는 자칫하면 진부하게 보일 수 있는 정혜의 과거의 아픔과 맞물려 우리는 모든 것을 보상받게 되고 우리는 그녀의 편에 서서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왜 그렇게 카메라가 계속 흔들렸는지, 그녀가 평범한 일상을 왜 저렇게 흔들리며 살아갔는지를 말이다.   

 

정혜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정혜의 의지 때문이지 환경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자 때문도 아니다. 도리어 남자로 하여금 큰 상처를 받았으면 받았지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정혜는 보통 29살의 보통 여자처럼 식물도 기르고, 어미 잃은 고양이를 연민에 이끌려 데려다 키우고, 동료들과 퇴근 후 술도 한잔 마실 수 있고, 사랑으로 아파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도 있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있는 여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녀의 삶이 평범해 보이지만 그녀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감독은 어머니의 부재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라 말했다. 그렇다. 정혜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매개자이자 세상과 마주하기 전인 태초부터 함께 한,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던 것은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정혜는 세상과 직접 마주해야 했다. 부재한 어머니의 자리는 그리움을 넘어 집착에 가까웠고 그녀는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곳에서 늘 어머니를 만들어 내곤 했다.   

 

<여자,정혜> 이윤기, 2005

 

 

그런 그녀에게 자신처럼 세상에 홀로 버려진, 남겨진 듯한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는 연민이 일었을까? 그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된다. 그냥 데리고 가서 씻기고 먹이고 하면 될 것을 우리의 정혜는 동물 병원에 까지 데려가 자신의 품 안에 함께 할 고양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끝까지 수행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상처를 줬었던 대상의 사람이 아닌 고양이에게서 사람들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고양이는 어두운 쇼파 밑에서, 마치 정혜가 세상과 단절한 것처럼, 세상을 두려워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정혜처럼 세상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또한 정혜가 정성껏 준비한 먹이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고양이의 경계는 풀어지고 그녀와 수건도 함께 쓰고 그녀의 배 위에서 낮잠도 자고 그녀의 발을 핥기도 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때, 그녀의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고양이가 있던 자리에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 지며 고양이가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감독은 우리에게 넌지시 보여준다.  

 

그런 그녀의 반복되는 우체국 업무, 무의미한 이야기만 주고받다가 헤어지는 동료들과의 술자리, 혼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홈쇼핑 진행자, 하지만 곧 우리는 알게 된다. 그녀가 얼마나 끔찍한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특히나 만취한 남자의 울부짖음을 자신의 품 안에서 어루만져 주며 성추행 당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뒤에 그의 칼을 손수건으로 곱게 접어 자신의 핸드백에 넣는 장면은 곧 일어날 사건을 암시해 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서 음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식물에다 물을 주고, 고양이를 돌보는 모습에서 우리는 마치 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칼은 정혜의 상처처럼 ‘여전히’ 자신의 핸드백 안에 들어있다. 정혜가 상처 입고 스스로를 가둔 방 안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 감독의 의도가 섬세하게 잘 표현된 부분은 그녀와 고모부의 만남과 그 후이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돌려 주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며 주워온 고양이를 다시 있던 자리에 버리고, 칼이 ‘여전히’ 들어 있는 그 핸드백을 들고 고모부를 찾아간다. 하지만 결국에 그녀는 고모부에게 자신의 상처를 앙갚음하지 못한다. 도리어 자신이 상처를 입는다. 그것도 빨간 피가 정혜 스스로의 눈에 보이는 상처를 말이다. 이 부분에서 상처를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대신에 그녀는 자기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는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 안에 있는 상처들에게 이유를 붙이거나 힘들게 참아내는 대신에 상처 입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칼에 벤 손처럼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고 앙갚음 보다 더 강한 울음을 터뜨린다. 화장실에서 오열하는 정혜의 모습이 아직도 내 뇌리에서 떨쳐져지지 않는 것은 영화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한 정혜의 힘도 컸지만 앞의 이유 때문에 더 슬프고 더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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